생산자 Creator

0008, 김중업건축연구소

분류번호
0008

이름
김중업건축연구소 (金重業建築)

생년월일
1956년 3월 개소

출생지
서울

1956.03. 김중업건축연구소 개소, 김중업 경주국립공원위원회 기초위원

1956.04. 홍익대학교 건축미술학과 교수 맟 기술고등고시 위원 위촉

1956.09. 국전 심사위원 위촉

1957.03. 산업은행 UNCURK 주택정책집행 기술고문 위촉

1957.04. 제1회 김중업건축작품전 개최

1959.04. 원자력연구원 위촉으로 관계시설 조사차 도미, 국회의사당 현상모집 작품 심사위원, 국회전문위원 위촉

1960.03. 한국은행 기술고문 위촉

1960.07. 중앙도시계획 위원 위촉

1960.09. 세계문화자유회의 집행위원 위촉

1961.06. 문화재 보존위원 및 신인예술상 심사위원 위촉

1962.04. 오월 문예상 심사위원 위촉

1962.06. 미국 시애틀에서 개최한 제1U.N.국제국립공원회의에 한국대표로 참석 및 회의 부회장에 피선

1963.06. 미국 뉴욕에서 개최한 뉴욕 세계박람회 한국관 설계차 도미

1964.07. U.N. 본부 위촉 한국 UNCURK 기술고문 위촉

1965.09. 국전 건축심사위원장 위촉

1966.01.-05. 프랑스 경제성 초청으로 도시계획 및 주택정책에 관하여 연구 시찰

1967.03. 홍익대학 건축·도시·국토계획연구소 소장, 연세대학교 가정대학 강사 위촉

1967.09. 한국 조패공사 기술고문 위촉

1968.03. 한국건축가협회 부회장 위촉

1969.01. 일본 외무성 위촉 주한일본대사관 건설기술고문 역임

1969.03. 인하공과대학 대학원 강사 역임

1969.04. 한국 과학원 위촉 정부대표로 아프리카 니-제국 세라믹센타 건설 자문 차 니-제국 방문

1971.09. 아프리카 니-제국 정부 초청으로 세라믹센타 착공 및 감리 차 니-제국 체류

1971.10. 제2회 김중업건축작품전 개최, 건축가 김중업영화 시사회 개최(프랑스 정부 제작)

1971.11. 프랑스 정부 초청으로 도시계획 및 주택정책에 관하여 연구시찰

1972.03. 르꼬르뷰지에 재단 이사 위촉

1973.02. 프랑스 몽뻬리에 국립건축대학 교수 역임

1973.04. 프랑스 DPLG(프랑스 공인 건축가 자격) 취득, 프랑스 PARIS에 김중업건축연구소 지소 설립

1974.09. 프랑스 PARIS 건축대학 명예졸업증 수여

1975.09. 도미 RHODE ISLAND 예술대학(L.I.S.D) 교수 역임

1975.10. 미국 PROVIDENCE에 김중업건축연구소 지소 설립

1977.11. 아프리카 나이제리아 라고스(LAGOS)EBUN OLUWA SPORTS HOTEL 설계계약 차 나이제리아국 방문

1978. 미국 HARVARD대학 SCHOOL OF DESIGN 교수 역임

1978.10. 귀국

1982. 독립기념관 건립위원회 기획위원 위촉, 대한민국 국전 심사위원장 역임

1983. 국립박물관 기술위원 역임

1984. 한국인테리어디자이너협회 명예회원 위촉

1985. ㈜김중업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역임

1942.01.-1945.08.15. 본 연구소 개소 전 대표 김중업의 작품
신경 삼정(미쓰이) 본관, 지하 1층 지상 5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2,750평, 만주
횡빈(요코하마) 종방(가네보)백화점, 지하 1층 지상 4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4,390평, 일본
천기(가와사키) 삼정(미쓰이)해원구락부, 2층 목조, 연 728평, 일본
구주(규슈) 대무전(오무타) 탄광 전체계획 및 각종 건축물, 연 18,527평, 일본
기타 주택수종

1945.08.-1952.09. 해방 후부터 도불 전까지
우이동 충무공기념도시 및 체육관 도시계획
충무공기념사업회 및 대한체육관 의뢰, 서울
한국전쟁 충혼탑 현상설계 2등 당선
패각의 침실 외 주택 수점, 부산 송도

1952.09.-1956.03. 재불시
인도 푼잡 정부수도 샹디갈 도시계획, 인도
동 정부청사, 지하 1층-지상 9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15,600
동 국회의사당, 지하 1층-지상 4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5,600
동 고등법원, 지하 1층-지상 5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3,720
동 대통령 관저, 지하 1층-지상 4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2,430
불란서 낭트 종합아파트, 지하 1층-지상 13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32,900
파리 학생도시 브라질관, 지하 1층-지상 9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4,270
핀란드 호반 밀바의 집

1956.03.05. 김중업건축연구소 개소

1957.04.12.-04.30. 공보실 공보관에서 1년간의 작품을 모아 제1회 작품 전시회 개최

 

 

연구소 개소이래 대표 작품

1956.
필그림 홀, 서울
서울공대 강단에서 유네스코(UNESCO)’ 주최로 르·꼴뷰제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다. 베니스에서 열린 세계예술가 회의 회장에서 그를 만난 것이 나의 운명을 거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19527월의 일이었고 그와 낮과 밤을 가리지 않는 작업이 19562월까지 계속 되었다. 파리의 그의 연구소에서 샹디갈의 엄청난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때로는 울고 때로는 웃는 뼈를 가는 제작의 세계에 몰입한 체험이 나에게 건축에의 참눈을 뜨게 해주었다. 천직으로서의 건축창조가 멋있기에 앞서, 얼마나 험하고 준엄한 일인가를 깨닫게 했으니 말이다. 1956년에 귀국하여 필그림·, 부산대학교 본관, 명보극장, 건국대학교 도서관 등을 꾸미면서 역부족에 허덕이는 자화상이 애처롭기만 한 시절이었다.

명보극장, 3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720평, 서울
부산대학교 본관 및 정문, 5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3,768평, 부산
건국대학교 도서관, 4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1,250평, 서울
숭실대학교 교사 계획안, 3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3,200평, 서울
경주국립공원 계획안, 경주
해군박물관 계획안 진해

1957.
한국은행 신관 계획안, 3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829평, 서울
인천지방 해무청사, 3층, 철근콘크리트조, 인천
묵호지방 해무청사, 3층, 철근콘크리트조, 묵호
워싱톤공원 자유의 종각 계획안, 미국 워싱톤
경복궁 재정비 계획안

1958.
서강대학 본관, 지하 1층-지상 4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4,720평, 서울
1957년에 경주 국립공원계획, 인천 해무청 청사 등에 뒤이어 1958년에 서강대학교 본관을 꾸몃다. 동숭동의 서울대학관사에서 몇몇 뛰어난 제자들과 아직도 흠뻑 르·꼴뷰제의 체취에 젖어 그의 영향에서 하루바삐 빠져 혼자의 힘으로 걷고 싶어하던 처절한 시절의 작품이다. 구석구석에 아직도 그의 건축언어가 두서없이 엿보임도 당연한 일이리라. 오산에 미 제 5공군의 장교식당, 교회 등을 맡아 영어에 절절 매던 일들이 기억에 남는다. 이때 꾸민 일 중에 젊은 작곡가를 위한 자 집의 정다움이 한갖 위안이 된다.

수도여자사범대학 기숙사, 4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2,760평, 서울
청평양어장 별관, 연 122평, 청평
미 제5공군 조종사구락부, 1층, 목조 연 170평, 오산
서강대학 전체계획안, 서울
호국광장 계획안(예총위촉), 서울
성낙원 계획안

1959.
수원농사원 전체계획안 및 교사 강당, 수원
중앙공업연구소, 4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2,200평, 서울
드라마센타, 3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390평, 서울
유유산업공장, 2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780평, 안양
이화산업공장, 2층, 연와조, 420평, 서울
대한연극연구소 계획안, 3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803평, 서울
원자력연구소, 3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867평, 서울
경주시립도서관, 1층, 연와조, 107평, 경주
구 씨 저 계획안, 서울
최 씨 저, 지하 1층-지상 2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180평, 서울
조 씨 저 계획안, 서울
한국법학원 계획안, 서울

1960.
고려인삼공장, 지하 1층-지상 2층, 철근콘크리트조, 서울
유특한씨 저, 지하 1층-지상 2층, 연와조, 연 90평, 서울
계창업씨 저, 계획안, 서울
김진만씨 저, 계획안, 서울
시빅 센타 계획안, 서울

1961.
주한 불란서대사관, 4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485평, 서울
1959년에 도미, 원자력시설을 살피고 신공덕리에 원자력연구소를 꾸몄다. 수원에 농사원본관, 드라마센터, 유유산업공장, 이화산업공장, 고려인삼공장과 최리혁씨 댁 등을 다루었다. 이 시기는 기능이 어떻게 솔직히 형체화 되느냐는 작업이 모듈에 의해 탐구된다. 같은 해 봄에 나에게 멋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프랑스 정부가, 서울에 세울 대사관의 구상을 요청해왔고 프랑스의 유명한 일곱분의 건축가들과 기량을 가리는 더없는 기회가 주어졌으니 말이다. 샹봘대사가 당선될 가능성은 100분의 1에 불과하지만 좋은 작품을 만들어보라는 간곡한 부탁이었고 파리의 르꼴뷰제 선생님이 추천하셨다고도 했다. 첫 스케치는 뉴욕 브로드웨이의 메디슨호텔의 방에서 꾸며졌고 돌아오는대로 불철주야로 작업했으며 크리스마스의 큰 선물로 확정통고를 받았다. 한국의 얼이 담긴 것을 꾸미려고 애썼고 프랑스다운 에레강스를 나타내려고한 피눈물나는 작업이 나에게 엄청난 행운을 안겨주었다. 1960년 봄에 착공, 1961년 봄에 완공을 보고 1962년도 서울시 문화상과 1965년에 드골대통령으로부터 직접 프랑스국가공로훈장과 슈바리에 칭호를 얻기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나의 작품세계에 하나의 길잡이가 되었고 비로소 건축가 김중업의 첫발을 굳건히 내딛게 되었다. 또한 프랑스국가 공인건축가의 자격을 얻게 됨을소 1970년대 해외생활의 기구한 운명을 잉태하게끔한 뜻 깊은 작품이다.

대구대학 도서관 계획안,  대구
경주관광호텔 계획안,  경주
박정관씨저 계획안,  부산
이동찬씨저, 지하 1층-지상 2층, 철근콘크리트조, 연132평, 서울

1962.
성신병원, 지하 1층-지상 4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180평, 서울
동화 스튜디오 계획안, 서울
청평산장, 청평
우리나라의 자연이란 한없이 아름답기에 자그마한 정성을 알뜰히 수놓고 싶은 심경에서 조촐한 작품을 청평호반에 바쳤다. 지난날의 공장( 工匠)들이 같은 것을 만듦을 수치스럽게 여겨, 자기며 목기가 그렇게도 천하만별한 형태와 짜임새를 가져 그들의 신들린 손놀림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건축이란 크고 작고가 또는 고급스럽다든지가 문제가 아니라 있을 만한 곳에 반짝여줄 수 있어야 하고 아껴줄 수 있어야 한다. 값비싼 재료를 썼다해서 돋보이는 것도 아니고 있는 그대로가 얼마나 우리들에게 밝은 표정으로 정다웁게 방근 웃어주느냐가 소중하다. 뜨거운 햇볕에서나 어두운 노을 속에서도 우리들에게 항시 속삭여줄 수 있어야 비로소 건축이라 반길 수 있지 않은가.

청수장호텔 계획안, 서울
송현묘소 계획안, 서울
석굴암 전실 계획안, 경주
김태청 씨 저, 지하 1층-지상 2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117평, 서울
모윤숙 씨 저, 지하 1층-지상 2층, 연와조, 연 73평, 서울

1963.
뉴욕 세계박람회 한국관, 지상 2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307평, 미국 뉴욕
조흥은행 본관, 지상 1층-지상 14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8,000평, 서울
제주대학 이농학관, 연 2,206평, 서귀포
용인성당 계획안, 용인
문종철 씨 저 계획안, 제주
우윤희 씨 저, 지하 1층-지상 2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85평, 서울
세종대왕 기념관 계획안, 서울
서울 힐튼호텔 계획안, 서울
설원식 씨 저 계획안, 서울

1964.
군인 아파트 9동,  지하 1층-지상 4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6,234평, 서울
행촌병원, 지하 1층-지상 4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232평, 서울
유엔묘지 기념관,  1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600평, 부산
제주대학 본관,  지하 1층-지상 3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1,000평, 제주
1962년에는 시애틀에서 열릴 UN주최의 세계국립공원 회의에 들려 세계의 구석구석을 되돌아 볼 좋은 기회를 얻었고 성신병원, 모윤숙 씨 댁 등을 꾸몃고, 1963년에 뉴욕세계박람회 한국관을 설계하여 세 번째로 미국에 체류하여 루이스·, 필립·죤슨, 이요밍·페이들과 친교를 굳혔다. 서울 남산에 힐튼호텔을 계획했고 UN본부의 각국 대표들과 사귀였다. 나를 아껴주시던 독법학자이신 문 종철 학장이 제주도에 제주대학 본관 설계를 위하여 불러 주셨다. 한라산 줄기를 타고 제주 앞바다 용두암 옆에 이상에 불타는 젊은 학도들을 위한 전당을 꾸며 보자는 이야기였다. 건축이란 클라이언트와 건축가가 동심일체 될 때 비로소 쾌심의 작품이 탄생된다. 호화선 같다기도 하고 비행기를 닮았다고도 한다. 젊은이들에게 한없이 펼쳐지는 높고 깊은 꿈을 길러 주려고 애써 빚은 작품이어서 해외에서 더욱 알려지고 21세기의 건축이라 일컬어진다. 나에게도 소중한 작품이어서 쇠퇴해 가는 모습이 무척 가슴 아프다. 길이 남겼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한창우 씨 저, 지하 1층-지상 1층, 연와조, 연 43평, 서울
김법린 박사 묘소 계획안

1965.
심혜일병원, 지하 1층-지상 5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403평, 서울
유지봉 씨 저, 지하 1층-지상 2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130평, 서울
공무원교육원 계획안, 서울
김석원장군묘소 계획안, 서울
서산부인과병원, 지하 1층-지상 5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180평, 서울
거리의 세모진 좁은 땅에 세워진 병원이다. 건축이란 꼭 자기 주장을 해야 좋을 법도 없지만 땅의 바램이란 위에 세워지는 건축을 예견하기 마련이어서 더욱이 복잡한 거리 속에서는 더욱이 기를 쓰고 자신의 모습을 두드러지게 보이려고 함도 자연의 섭리이리라. 건축이란 하나의 뚜렷한 싸인이며 인간의 감성에 던져지는 강한 몸짓이기에 이 자그마한 병원도 강한 몸짓으로 눈길을 끈다. 둥근 면에 뚫려진 구멍들이 또한 살짝 붙여 돌아가는 발코니들이 삶에의 희열을 또한 태어나는 새 삶에의 찬가를 부른다. 건축을 한다는 게 하나의 즐거움인 동시에 미친 짓이라는 증좌다. 지붕부분의 판타지가 개악된 것은 못내 한스러우나 애착이 가는 작품이다.

1966.
창원빌딩 계획안, 서울
서울대학교 문이과대학 문학부 전체계획안, 서울
흥아빌딩, 지하 1층-지상 7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317평, 부산
제주대학 수산학과 교실 및 실험실, 지하 1층-지상 3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1,120평, 서귀포
창경원 수정궁 신관, 지하 1층-지상 3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472조, 서울
제주대학 교육학과, 2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320평, 제주
이난영 씨 저, 지하 1층-지상 3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97평, 서울
유엔묘지 정문, 1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39평, 부산
이국땅에서 평화를 위하여 싸우다 간 여러나라들의 천사들에게 두손 모아 경건히 바쳐진 작품이다. 한국적이라는 명제를 두고 조상들이 남긴 낱말만을 주어 모았자 오히려 전통을 욕보이는 일이 된다. 한국사람들만이 간직해온 참 얼을 어떻게 조형화하여 새얼을 담느냐는 그리 쉬운 일도 또한 하나 둘의 답이 나올 법 싶지도 않다. 이 소품은 한껏 부푼 선에 부드러움을 안겨 어린 시절의 아릿한 향수를 되살려 잃어버린 고향을 되찾아 보려는 벅찬 작업 중 하나의 소산이다. 다행히 UN관계 건축 속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건축이란 우·탄트 총장의 이야기를 들려주어 작가에게 큰 기쁨인 동시에 나에게는 소중한 작품의 하나이다.

이규훈 씨 저, 지하 1층-지상 3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320평, 서울

1967.
윤주탁 씨 저, 지하 1층-지 0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170평, 서울
이태리대사관저,  지하 1층-지상 3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280평, 서울
1967년은 비교적 다작의 해여서 F.N.C.B, C.M.B. SMELL 등의 외국지배인 주택들, 홍익대학 미술학부 교사, 갱생보호회 빌딩, 이규현씨댁, 박치현씨댁 등을 꾸몄다. 가회동에 세워진 이태리 대사관저는 그중의 하나여서 이태리의 전통적인 고전미를 현대화하려고 애쓴 작품인데 오히려 이태리정부에서는 무척 한국적이란 평을 들었다. 한국사람이 꾸미는 현대건축이란 어쩔수없이 한국적일 수 밖에 없음을 깊이 되새기게한 작업이다. 날씬하고 깨끗하고 과묵한 것 같으면서도 많은 이야기가 담긴 작품을 꾸미려고 한 흔적이 구석구석에 엿보이는 나로서는 역작이라 자부한다.

진해 해군극장 계획안, 진해
미국 F.N.C.B 한국지배인 저, 지하 1층-지상 2층, 석조, 연 190평, 서울
PFIZER 한국지배인 저, 지하 1층-지상 2층, 연와조, 연 120평, 서울

1968.
진해해군공관, 지하 1층-지상 3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700평, 진해
어릴 때부터 무척이나 바다를 좋아했고 20대에 바다에 관한 시를 곧잘 읊기도 한 나에게 제주대학 다음에 멋있는 과제가 주어졌다. 꿈같이 아름다운 항도 진해에 김영관 제독이 공관을 꾸미라는 부탁이여서 더욱이 국가원수가 가끔 찾아 편히 머물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기에 한껏 역량을 발휘하려고 애쓴 작품이다. 위엄이 있어야 하고 집무에나 안식에 적절해야 함은 물론 경호에 만전을 기하여야 하기에 한국만이 간직한 거대한 지붕 밑에 힘있는 기둥을 받치고 물과 빛이 아롱지는 멋과 둥글게 뚫린 구멍으로 뜬 구름을 끌어내리는 판타지를 살렸다. 통제구영에 있기에 손쉽게 볼 수 없는 흠이 있으나 나에게는 가끔 찾아가보고 싶은 귀한 작품이다.

국제화재해상보험회사 사옥, 지하 3층-지상 27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9,600평, 서울
SHELL 한국지배인 저,  지하 1층-지상 2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180평, 서울
우학물산주식회사 제2사옥, 지하 2층-지상 15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2,500평, 서울
국회의사당 지명현상설계, 서울
국회의사당 기본설계, 서울
보신빌딩, 지하 1층-지상 9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310평, 서울
갱생보호회관, 지하 1층-지상 15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2,500평, 서울
홍익대학 본관, 지하 1층-지상 8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4,200평, 서울
일신산업 활석공장, 지상 2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510

1969.
삼일로빌딩 지하2층 지상 31층 철골조 연 11,000평 서울
경주박물관 설계를 기와지붕을 올리지 않았다는 단순한 이유로 공사도중에 폐기당하고 여의도 국회의사당 설계에 강제 동원되다 밀려나고 서울 서부역사 설계는 사장되고 국립도서관 진해 충무공기념관 등도 햇빛을 봇보고 겨우 삼일로빌딩 하나가 완공된다. 이때 만든 서울 도큐호텔도 나의 뜻과는 달리 끝이 나니 씁슬한 시절이다. 멀리 아프리카의 니젤국 도자기쎈터만이 아직도 좋은 작품이란느 평을 듣고 있음은 아이러니컬하다. 삼일로빌딩에 얼킨 이야기들도 한두가지가 아니다. 31층의 높이를 최소한으로 줄여 빔을 뚫고 닥트들을 배열하고 날씬하게 보이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끝내 설계비 조차 받지 못하고 또한 엄청난 세금에 밀려 성북동 집까지 잃게 되고 급기야는 프랑스로 떠나야만 하는 비극의 씨를 뿌린 일이고 보니 완공과 동시에 신세계 화랑에서 고별작품전과 프랑스 정부가 제작한 건축가 김중업이란 영화를 보이고 당황히 71년 겨울에 핀란드의 알바·알토 교수의 뜨거운 신세를 진다음 프랑스로 떠나 79년에 귀국할 때까지 파리와 보스턴을 왕복하여 교수로서 또한 건축가로서 8년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자아발견에의 고된 길을 걷게 된다. 나의 청년기의 작업에 강한 피리어드가 찍혀진 셈이다.

수운회관 계획안, 지하 2층-지상 13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2,500평, 서울
진해 충무공 기념관 계획안, 지하 1층-지상 3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750평, 진해
한국무역회관 계획안, 서울
국회의사당 본관, 서울
남업은행 대구 칠성동지점, 지하 1층-지상 2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300평, 대구
서울역 서부역사 계획안, 지하 3층-지상 20층, 철골조, 연 13,000평, 서울
국립박물관 경주분관, 지하 1층-지상 2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3,000평, 경주

1970.
C.L.S(대한기독교서회)서고, 지상 2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200평, 서울
C.L.S(대한기독교서회) 종로빌딩, 지하 2층-지상 -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1,800평, 서울
산성칸트리구락부 클럽하우스, 지하 1층-지상 1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900평, 광주
제주대학 법문학부 도서관 및 연구실, 제주
제주대학 수산학부 강의실 및 실험실, 제주
국립중앙도서관 계획안, 서울

1971.
한남수퍼마켓 한남동영업소, 지상 1층, 연와조, 연 300평, 서울
니제 도자기공장KOREA-NIGER CERAMIC PLANT, 지상 1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350평, 아프리카 니제
여수화력발전소 #2본관, 지상 5층, 철골조, 연 3,500평, 여수
-코리아 칸트리구락부 방가로(15), 지하 1층-지상 1층 연 300평, 서울
유 씨 저, 지하 1층-지상 2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120평, 서울
김 씨 저, 지하 1층-지상 2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110평, 서울

1972.
한국나이론사옥 계획안,  지하 1층-지상 5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2,000평, 서울
신도림시장, 지하 1층-지상 2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820평, 서울

1973.
국제호텔 토산품판매점, 지하 1층-지상 5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500평, 서울

1974.
서울신탁은행 본점 지명현상설계, 지하 2층-지상 24층, 철골조, 연 12,000평, 서울
성공회 제1회관, 지하 1층-지상 4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1,410평, 서울
파리에 머물며 프랑스 정부 문화성 일을 틈틈이 도우며 파리 건축대학에 출강하는 한가한 나에게 서울에서 성공회 빌딩을 설계해 달라는 부름이 있어 덕수궁 담을 끼고 아끼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공회 성당 옆에 어울리는 회관을 구상했다. 원형빌딩에 둥근 창을 뚫고 옆으로 나지막한 강당(세실극장)을 길게 깔기로 했다. 무척 즐거운 작업이었고 모든 디테일을 수시로 서울 연구소에 지시하고 도면들이 하늘을 날아오고 갔다. 그러나 서울시 미관 심의위원회에서 이리저리 난도질당한 끝에 오늘날 서 있는 대로의 초라한 모습이 겨우 햇빛을 보고 나니 작가로서 무척 불쾌한 일이다. 원안의 아름다웠을 모습은 도면으로나마 영구히 남아 기억에 되살아나리라.

외환은행 본점 지명현상설계, 지하 3층-지상 30층, 철골조, 연 20,000평, 서울
파리에 찾아오신 홍명조 씨가 나의 설계를 받아다가 서울에 자기 집을 지었다. 반가운 일이다. 같은 해 외환은행 지명 경쟁이 있어 밤을 새워가며 알뜰한 작품을 만들었다. 을지로 입구에 반짝이여 도시의 경관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으리라 믿고 헬··땅드노아의 숲속에 파묻혀 짧은 시간 속에 모든 정열을 퍼부어 쌍둥이 원통형 탑을 세우고 앞에 드라마틱한 플라자를 두고 뒤편에 금고실, 강당을 붙여 도시의 심장이 강한 고동을 울리도록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자세로 제작에 몰두하였다. 이 작품은 채택은 안 되었을망정 나에게는 참으로 소중한 작품이 되었고 오히려 프랑스 건축계에서 아껴주는 고마움에 눈시울을 적셨다.

1976.
동양문화관, 철골조, 연 1,500평, 미국 보스톤

1977.
성공회 제2회관 계획안, 지하 1층-지상 3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1,000평, 서울
제주 오라관광휴양단지 종합개발계획, 연 100만평, 제주
호텔 계획안, 지하 1층-지상 10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10,000
스타트티하우스, 지하 1층-지상 1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140
티하우스(2), 지상 1층, 벽돌조, 연 50
부흥건설 본사 증축계획안, 지하 1층-지상 4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500평, 서울
장교수 저, 지하 1층-지상 2층, 벽돌조, 연 70평, 서울
추사장 저, 지하 1층-지상 2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70평, 부산
대창빌딩, 지하 2층-지상 5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2,040평, 서울

1978.
신도림시장 증축, 지하 1층-지상 1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500평, 서울
설악파크호텔, 지하 2층-지상 6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3,500평, 설악산
최 씨 저, 지하 1층-지상 2층, 벽돌, 연 110평, 서울
EBUN OLUWA SPORTS HOTEL, 지상 4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20,000평, 나이제리아제 라고스 시
1955년에 니젤도자기센터를 니아메이Niamey에 완공하고 미국 프로비덴스Providence의 R.I.S.D 교수로 부임했다. 3차원 디자인 교수로 불려 간 것이다. 동시에 하버드대학 디자인 대학원 객원교수로서 건축학을 가르치게 되었다. 이곳 대학원장이자 르·꼴뷰제연구소 동문인 쏠탄Jerzy Soltan 교수와 같이 연구소를 꾸몄다. 바다호텔의 기본구상이 이때에 이루어진다. 1977년 연말에 나이제리아에 불려 대통령 누님의 요청으로 레이고스에 330객실의 호텔을 설계하게 된다. 신국제공항 바로 옆에 지어지는 호텔로서 트로피컬 기후에 적합한 프리패브식 호텔로서 뒤편에 200세대의 콘도미엄을 병설하는 계획이다. 이 공사를 한국 측에 맡기기 위해서 두 번 한국을 드나들어 당시 나이지리아에 진출할 수 있는 건설회사는 국내에 둘 밖에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고 이 나라의 외환관리법이 무척 까다로워 미국인을 고용하고 있는 연구소로서 벽에 부딪치게 된다. 더욱이 본 설계를 진행하고 있는 동안에 대통령이 바뀌어 일단 중단되는 비운을 맞는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멋있고 쓸모 있는 자랑스러웠을 이 호텔은 현지 유지들이 애석해하며 다음 클라이언트를 꾸준히 기다리고 있다. 공중에서 내려다 본 광경이 우리나라 옛 실패와 같다고도 한다. 얘기치 않았던 일이 되서 아름다움이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름 없음을 나타내는 좋은 본보기의 하나이다.

1979.
한국교육개발 연구원, 지하 1층-지상 5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1,400평, 서울
1979년에 영구 귀국한다. 알뜰한 작품을 고국에 남기고 싶고 뜻있는 젊은이들에게 건축가의 참 모습을 보이고 싶은 까닭이다. 명예나 재산도 탐 낼 나이가 넘었고 오로지 성심성의 좋은 작품을 수놓고 싶어서다. 귀국 첫 작품으로 이 작품을 바쳤다. 태양열과 풍력을 시험하고 싶고, 연구기관다운 풍부함을 담고 싶고 고속도로에서 빤히 바라다 보이는 언덕에 반짝 빛내고 싶어서이다. 많은 이야기가 오고갈 수 있고 이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즐거움을 들여 한국교육방송에 획기적인 기원을 긋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쇼핑센타 태양의 집”, 철근콘크리트조, 연 2,900평, 서울
지나가다 돌아보고 싶고 걸음을 멈추고 기웃거려 보고 싶은 곳, 부담 없이 들어가 거닐고 싶어지고 콧노래를 부르며 팔고 싶고, 사고 싶은 곳, 장터를 바람과 비를 막아 아늑한 환경으로 새롭게 꾸민 곳, 서민적이면서도 귀티가 나고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돋보이는 곳, 외국 살림에 쪼들리다가도 장터에 가면 무엇인지 모르게 웃고 싶고 이야기를 걸고 싶은 충동이 또한 누구나가 친한 벗같이 느껴지던 감회가 이 작품을 아기자기하게 꾸미게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은 낯익지 않은 모습일는지 모르나 일열로 놓인 상품들이 강압적으로 감정을 강요하는 서울거리에 이런 집들이란 무척 기다려진지 오래이다.

바다호텔 계획안, 제주
3면이 바다에 에워 쌓인 한반도는 바다에의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바다에서 살 수 있다는 꿈은 약진 한국의 자랑의 되어야 한다. 외화 획득에도 가장 실속 있고 빠른 길이다. 두 척의 견인선이 세계 어디든 끌고 갈 수 있으니 말이다. 하버드의 동료들과 같이 몇 해를 짜고 분석하고 재구성한 이 프로젝트는 꼭 한국 앞바다에 세우고 싶다. 1,200개의 객실이 있고 국제회의장, 대연회장, 수족관, 대식당, 각종 오락실, 쇼핑센터, 공연장을 갖추고 모두가 조립식 세공법에 의하여 간단히 꾸며지며 케이블카와 페리보트로 연결되며 요트하버구실도 하고 스쿠버다이버 쎈터의 역할도 한다. 우리나라 기술의 국제적인 개가이며 세계 최초의 완벽한 수중 호텔이다.

민족대성전 계획안, 서울
건축이란 예부터 나라의 자랑스러운 심볼 구실을 해왔다. 한국문화의 심볼구실을 할 수 있는 국민의 전당이 절실히 필요한 때는 방금 오늘이다. 세계 정상국에 발돋움하는, 오늘 이를 위한 문화 전당이 절실히 요청된다. 모든 종교의식, 오페라, 오케스트라, 연극, 무용, 영화, 페스티발, 국전, 문화의 밤, 국제세미나, 실크, 축제, 모든 문화행사를 할 수 있고 이에 사바티칼 컬리지Sabbatical college를 병설한 20세기 한국문화전당은 21세기에 접어드는 오늘 절실히 필요하며 국민정신앙양, 안보교육, 대화의 광장으로서의 힘찬 구실을 하리라. 이 전당 자체가 하나의 멋있는 드라마여야 하고 약진하는 한국을 생생히 상징해야 한다.

아나백화점, 서울
건축가에게 무척 반가운 것은 8년 만에 귀국한 나에게 옛 클라이언트들이 다시 찾아 귀한 일들을 맡겨주시는 일이다. 이 아나백화점도 쇼핑센터 태양의 집도 이러한 귀중한 예의 하나다. 우리나라의 도시 모습들이 온통 찌푸리고 일그러져 처절한 속에 구석구석 밝은 표정을 수놓아 숨통을 뚫어 보려는 나의 집념의 하나로서 이 아나백화점은 소중한 작업의 하나이다. 지나가는 이에게 씽긋 웃어주며 반갑게 이야기를 걸어주어 대화의 광장을 넓혀보리라는 집념이 이 작품을 낳았다. 그냥 스칠 수 없는 강한 인상이 알뜰히 꾸며진 내부로 유도되어 편히 쉴수도 눈을 즐길 수도 있는 공간, 새로운 유행이 건전히 자라고 랑데부를 부담 없이 청할 수 있는 것, 잊혀지지 않을 한 때를 기억 속에 깊이 새겨 넣을 수도 있는 곳. 이런 것들이 하나, 둘 세워지면 도시란 얼마나 멋있는 곳이랴 싶어져서 정성껏 꾸몄다.

신제주 호텔 계획안, 철근콘크리트조, 연 6,800평, 제주

방배동 민 씨 저, 벽돌조, 연 143평, 서울

한남동 이 씨 저, 벽돌조, 연 100평, 서울
1979년은 나에게는 창작의욕이 복받친 한해였다. 오래간만에 하고 싶은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즐거움이 많은 밤들을 삼켰다. 이 집은 내가 살고 싶은 집이다. 둥근 공간이란 더 없이 풍부한 것, 한강이 환히 내려다보이는 요지에 초가집에서 온 부드러움을 담았다. 울고 싶을 때 맘껏 흐느낄 수도 있는 아늑한 공간이 있고 손들과 밤새 벽난로의 화사한 불꽃에 어울리어 색유리에서 비친 달빛의 흐름에 취하며 정답게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고, 에워싼 수없이 많은 꽃들이 향기를 듬뿍 풍기는 우리네들만의 공간, 있는 그대로의 자연 속에 또 하나의 자연을 수놓는 작업이었다.

1980.
금성컨트리클럽 계획안 철근콘크리트조 연 900평 부산
신갈컨트리클럽 계획안 철근콘크리트조 연 700평 신갈
오산 명성교회 계획안 지상 3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636평 오산
부산 충혼탑 높이 70M 철골, 철근콘크리트조 연 1,873평 부산
몸바쳐 나라와 겨레를 위한 단심을 길이 후손에게 새긴다는 작업은 두 손 모아 정성껏 하늘에 바치는 기도하는 자세에서만이 빚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항도 부산의 대청공원 언덕위에 우뚝 솟아 짜릿한 감동으로서 장한 이들이 귀히 흘린 핏줄을 후손들에게 이어받게 함은 건축가로서 그지없이 보람 있고 감격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아홉 개의 원륜들을 벽체들이 높이 받쳐 올린다는 영감은 이일을 위임받는 순간 떠올랐다.
원륜이란 혼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곳.
아홉 개의 벽체들은 황룡사 9층탑을 세웠을 당시의 천지우주 사상에서 연유된 것이다.
아홉 방향이란 전 우주를 돌고도 남기에 겨레를 위한 혼백들이 온갖 방향에서 굳건히 지켜주고 있다는 상징인 것이다. 186m 고지위에 9엽의 못에 140m 깊이로 투영된 70m 높이의 탑은 항도의 상징이여 항시 험준했던 남쪽 바다를 지켜주기에 부족함이 없으리라. 오색 빛이 황홀이 빛날 이 충혼탑이 충혼들에의 뜨거운 진혼가를 읊어 빛을 더해 주리라 믿고 둥근 석굴 속에 깊이 잠드소서.

1981.
대구 이교수 저, 지하 1층-지상 2층, 철근콘크리트조·적조, 연 40평, 대구
경찰대학 계획안, 지하 1층-지상 3층, 철근콘크리트조, 용인
경남도청사 계획안, 지하 1층-지상 5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9,479평, 창원
부산 문화회관 계획안, 지하 1층-지상 4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6,612평, 부산

1982.
성북동 지은이네 집, 지하 1층-지상 2층, 철근·조적조, 연 99평, 서울
논현동 한 씨 저, 지하 1층-지상 2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100평, 서울
U.N 참전기념관 및 기념탑 계획안, 지하 1층-지상 3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1,200평, 부산
육군박물관, 지하 1층-지상 4층, 철근콘크리트조, 연 1,818평, 서울
나의 연구소가 만 25주년 되는 해인 1981년 새아침에 김복동 교장이 푸짐한 선물을 안겨주었다. 이 전통 깊은 육사 구내에 영원히 남길 육군박물관을 구상하라는 요청이다. 연구소도 새로이 단정했고 알뜰한 제자들도 모여 들었으니 꼭 걸작을 붓고 싶을 때였다. 건축물 자체가 기념성이 풍부해야 하고 전시공간이 극적이어야 하고 빛과 물이 아롱져 더욱 돋보여야 한다. 귀여운 자식 같은 제자들과 수많은 밤을 지새며 열심히 제작했다. 제작 컨디션이 무척 좋아 알뜰하고 보람 있는 작품을 꾸미게 되었음은 연구소의 앞날을 위하여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평창동 호강사 지하 2층 지상 2층 철근콘크리트조, 조적조 연 4,335평 서울
경상남도 문화회관 현상설계(당선) 지하 1층 지상 3층 철골, 트러스조 연 1,800평 진주
옛 도읍지였던 진주시에 세워지는 문화회관이었기에 매우 의의 있는 일이었다. 더욱이 임진왜란 때 끝까지 민족수호의 아성이었고 논개의 의거와 더불어 유서 깊은 진주성이 남강의 우아한 자태를 빚어 대지 조건이 특이하고 이곳에 문화의 모임이 꾸며진다는 조건은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매년 개천제가 열리는 오랜 전통이 더욱 보람 있는 일이라 믿음직스러웠다. 그렇기에 전통과 오늘의 만남이 극적인 효과를 나타내야 하고 모이는 이에게 뿌듯함을 던져주도록 애썼다. 예도인 진주시만이 아니라 경상남도의 상징이어야 하고 예술성에서도 유니크한 장소이어야 했다. 그러기에 원통 공연장에 넓고 당당한 지붕을 높고 우아한 기둥으로 받쳐 넓고 시원한 계단이 더욱 상승감을 더하고 그 밑에 전시공간과 모임의 장을 장만했다. 썬큰가든을 끌어들이면서 공연이 없을 때도 지붕까지 올라갈 수 있는 승강기와 계단이 있어 옥상에서 진주성과 남강을 부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당놀이와 검무를 즐길 수 있고 시인과 같이 숨쉴 수 있어 그들의 큰 자랑거리가 되리라 믿는다. 이규호 경남지사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음을 부기하여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