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물 Publication

한국현대건축의 기록

원정수·지순 구술집

목천건축아카이브 한국현대건축의 기록5

원정수·지순 구술집

채록연구 | 최원준, 배형민

진행 | 목천건축아카이브

출판 | 마티, 2015-12-11

352쪽 ㅣ 170X230mm ㅣ ISBN 979-11-86000-24-3-04600

살아 있는 역사, 현대건축가 구술집 시리즈를 시작하며

원정수·지순 구술집을 펴내며

 

1. 성장기 및 대학시절

2. 졸업 후 사회진출

3. 일양시대
일양의 설립(1969)과 구성원, 주택 작품, ‹포항제철 연수원›(1969), ‹서울대 학생회관›(1972), ‹대한마이크로 부평공장›(1973), 선경 관련 작업, 현상설계 ‹한국은행 본점›1차계획(1976년, 현상설계 1등 당선) ‹한국은행 강릉지점›(1978), «원정수 지순 건축전»(1971), 해외 답사, 지순의 연세대 주생활학과 임용과 여성단체 활동, 건축계의 지인들과 목구회

4. 간삼시대1: 1980년대와  <한국은행 본점>
럭키그룹 관련 활동(1980-1986), ‹한국은행 본점› 2차계획(1982, 정림과 협업), 간삼의 설립(1983), 파트너십의 사무실 체계, 원정수-지순 협업체계, ‹한국은행 본점› 3차계획(1984, 현상설계 당선 및 본설계), 1980년대의 기타 작품들

5. 간삼시대2: 1990년대 이후와  <포스코 센터>
포스코 프로젝트의 배경, ‹포스코21›(1991, 니켄세케이와 협업), ‹포스코 센터›(1995, 포스코 A&C와 협업), ‹명동대성당 축성 100주년 기념 건축설계경기› 심사위원(1995), ‹절두산성당›, ‹명동성당 2차 프로젝트›, 『명동성당 보수공사 수리보고서』(2010), 1990년대 건축가들과 건축단체

6. 건축계의 지난 흐름, 그리고 앞날
건축가의 소멸시대, 건축과 테크놀로지: 변화와 유동성

약력
찾아보기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원정수, 지순 선생은 대학교 선후배로 만나 인생과 건축의 동반자로 반세기 넘게 우리 건축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부부건축가다. 1966년 함께 건축사 면허를 취득한 후 (지순 선생은 우리나라 첫 번째 여성건축사다.) 1969년 일양건축을 설립하여 ‹서울대 학생회관›(1972) , ‹한국은행 강릉지점›(1978)과 같은 작품들을 남겼으며, 1983년 이범재, 김자호, 이광만 선생과 함께 설립한 간삼건축에서는 ‹한국은행 본점›(1987) , ‹포스코 센터›(1995) 등 한 시대를 규정하는 프로젝트들을 수행하며 우리 건축계의 대표적인 대형 설계사무소로 키웠다. 두 선생은 동시에 각각 인하대학교 건축공학과(1963 -1999)와 연세대학교 주생활학과(1971-1991)의 교수로서 교육현장 일선에서 후속 세대들을 양성하기도 했다. 활발한 설계작업을 하는 현업 건축가가 전임교원으로서 교육에도 임하는 사례는 당시에는 이례적인 것이었다. 학생들은 이론과 실제의 간극이 없는 교육을 받을 수있었고, 두 선생은 설계의 기반이 되는 사회적·기술적 연구들을 진행할 기회를 얻었다. 원 선생은 글쓰기에도 열정적이었다. 1960년대부터 건축 관련 간행물들에 꾸준히 기고해왔으며, 『한국건축 어디로 가고 있는가』(1999), 『건축세상만사: 원정수의 건축으로 세상보기』(2010), 『집: 한국 주택의 어제와 오늘』(2014, 지순과 공저) 등 단행본을 출간하였다. 부부 건축가, 교수 건축가, 말하는 건축가. 이제는 꽤 보편화된 건축가의 모습들이지만, 그 세대에서는 보기 드문 면모들이었다.

목천건축아카이브의 구술집 시리즈는 일차적으로 두 선생이 속한 세대, 즉 1950년대에 대학을 졸업하고 이후 우리나라 고도 성장기에 전격적으로 건축계에 몸담았던 세대의 증언을 통해 한국 근현대 건축계를 조명해오고 있다. 첫 번째로 김정식 선생(2010년 진행/2013년출간) , 두 번째로 안영배 선생(2011년 진행/2013년 출간) , 네 번째로 윤승중 선생(2012년 진행/2014년 출간)의 구술채록이 이루어졌으며, 원정수, 지순 선생을 다섯 번째 증언자로 모셨다. (세 번째 구술은 예외적 으로 4·3그룹의 1990년대 초 활동을 대상으로 하였다.)

구술채록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것은 전화의 사용이 보편화된 20세기 중반이었다. 업무 관련 교신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전화는 이전 시대의 서신과 달리 어떠한 물리적 기록도 남기지 않아, 구체적인 사실을 남기려면 당사자의 구술 증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메일로 ‘쓰기’ 문화가 부활한 오늘날은 또 다른 상황이라 할 수있다.) 구술채록은 구술자의 기억과 주관적 해석에 의존한다는 한계는 있지만, 세밀한 개인사의 영역까지 다루기 때문에 미시사적 연구에 서는 중요한 사료다. 특히 건축에서 그 가치는 더욱 빛난다. 설계에서 시공에 이르는 긴 과정에 걸쳐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영향 아래 수많은 사람의 공동작업으로 이루어지는 분야이기에, 그 총체적인 이야기는 건축물 자체나 도면, 시방서 혹은 건축작품집만으로는 전달될 수없기 때문이다. 원정수, 지순 선생의 대표작인 ‹한국은행 본점›과 ‹포스코 센터›는 아마도 우리 근현대 건축사에서 가장 긴 산고 끝에 태어난 작품들일 것이다. 건축 외적인 요인들로 인해 설계가 진행되다 취소 되길 여러 차례 반복했다. ‹한국은행 본점›의 경우는 첫 번째 현상설계 당선에서 준공까지 햇수로 12년이 넘게 걸렸다. 본문에서 인용된 김수근의 말처럼 “건축은 건축만으로 해결이 안”되는 현실의 이모저모는 공식 보도사진의 파노라마적 풍경만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것이다. 한국현대건축 1세대라 불리는 김수근, 김중업이 해외에서의 수학과 견문에 힘입어 활동하고, 이후 1990년대 초를 기점으로 해외 유학파들이 본격적으로 등단했다면, 그 사이에 위치한 두 선생은 순수하게 국내 현실을 “몸으로 부딪치며” 성장했던 세대에 속한다. 두 선생의 구술에는 그래서 현실이라는 토양의 단면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대학시절의 활발한 실습을 통해 김희춘, 김정수, 배기형, 이광노 등 앞선 세대의 활동을 현장에서 보조하였으며 이후에는 교육자로서 후학들을 양성 하였기에, 두 선생의 증언은 한 세대의 범위를 훌쩍 넘어선다.

원정수 선생의 이야기에는 세계 문명의 거시적 흐름에 대한 지적 호기심, 최신 과학기술의 수용과 기술적 완성도를 향한 집념, 손에 잡히는 필기도구로 빠른 시간에 형태적 영감을 스케치하는 조형의지 등 서로 상충하는 듯한 동인들이 공존한다. 원정수 선생이 좋아하는 건축가가 에로 사리넨이라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독특한 곡면 형상의 TWA공항에서 차디찬 IBM사옥들까지 다양한 양식의 작품들을 남긴 사리넨은, 작가로서의 일관성이 돋보이는 건축가들이 각광받던 시절에는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기도 했다. 프로젝트마다 상황에 맞게 서로 다른 접근과 전략, 형태언어를 구사하는 사리넨의 건축가적 자세는 “새 쏘는데 대포 잘 쏜다고 [새총 말고] 대포로 쏘냐? ”고 묻는 원 선생의 생각과 상통한다. 이러한 유동적 태도는 우리 사회의 급변하는 물리적· 사상적 환경 속에서 형성된 것일 뿐 아니라, 이에 대응하는 유효한 전략이기도 했다.

지순 선생은 디테일의 설계, 일정 진행, 견적 및 법률 검토, 조직의 운영 등 보다 실무적인 과정들을 맡았다고 한다. 구술 중 서로 기억이 어긋날 때면 으레 “지 교수 말이 맞을 거다”라고 할 만큼 지 선생의 정확함에 대한 원 선생의 믿음은 컸다. 일양건축 초기 주택 설계를 진행 하면서 원 선생이 평면도를 그리면 지 선생이 바로 상세 단면도를 그리고 견적까지 냈다는 공동작업 방식이 인상 깊다. 간삼건축이 오늘날 대형 설계사무소 중에서도 안정된 협업 체제와 기술적 전문성을 갖추게된 배경에도 두 선생 간 파트너십의 경험들이 있었으리라 짐작해본다.

인터뷰는 2012년 겨울부터 2013년 봄까지, 목천건축아카이브 운영위원 배형민과 최원준의 진행으로 7회에 걸쳐 서울 중구 신당동의 간삼건축 임원실에서 진행되었다. 원정수 선생이 상시 참석한 가운데 지순 선생은 가끔은 중간에 합류하여 회고를 함께했다. 그리고 2015 년 여름과 가을, 지순 선생의 성장기와 여성건축가로서의 활동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기 위해 2회의 인터뷰가 추가로 진행되었다.

기술적으로 본다면 본 구술집은 총 아홉 차례에 걸친 인터뷰를 있는 그대로 풀어쓴 것은 아니다. 시간 순으로 구술 진행의 틀이 설정되었 지만 한번 시작된 이야기는 종종 그 틀을 넘었다. 시대를 넘나들며 소재별, 주제별로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영화에 비유하면 과거로 돌아가 거나(플래시백) 미래로 갑작스럽게 건너뛰는(플래시포워드) 원 선생님의 열정적인 이야기 스타일은 그 자체로 현란한 경험을 제공했다. 두선생이 동시에 말씀하시는 순간은 로버트 알트만 영화의 다중음성 장면만큼이나 흥미진진했지만, 글의 형식으로 독자에게 전달되기는 어려운 것이었다. 따라서 촬영 장면들을 편집해 다큐멘터리를 완성하듯두 선생의 이야기들을 시대와 세부 주제별로 재조합하는 과정을 통해본 구술집이 만들어졌다. 함께 일양건축을 설립하면서 인생의 여로가 하나로 합쳐지기 이전의 이야기들은 두 선생을 나누어 따로 정리하였다. 중복된 내용들에 한해 일부 삭제가 이루어졌고, 원 선생의 친근한 말투는 존댓말로 윤문이 이루어졌음도 밝혀둔다. 생생한 현장감보다는 독자의 편의성을 우선한다는 원칙으로 편집이 이루어졌다. 인터뷰 현장의 모습은 음성 및 영상으로 담아 목천건축아카이브 자료실에 보관되어 있다. 원 선생이 2013 - 2015년에 걸쳐 기증한 주요 작품의 도면, 스케치, 사진, 원고, 메모 등도 함께 보관되어 연구자들의 접근을 기다 리고 있다.

구술집은 최종 목표이기보다는 새로운 학문적 접근을 위한 토대를 다지는 작업이다. 정림건축 김정식 회장, 원도시건축 윤승중 회장에 이어 원정수, 지순 선생의 구술집이 발간되면서, 이제 1960년대 말에 개소하여 대형 설계사무실을 육성한 세대의 증언과 자료가 꽤 두껍게 축적되었다. 본 구술집의 출간에 맞추어 개최되는 국제심포지엄 « Architecture, Inc. : 대형설계사무소의 탄생»은 보다 확장된 1차 사료 들을 기반으로 대형 사무소의 특성과 영향에 대한 역사적 해석이 활성화되는 시발점이 되기를, 그럼으로써 우리의 근현대 건축사가 좀 더 풍부한 층위에서 읽히기를 기대한다. 목천김정식문화재단의 김미현 국장, 김태형 연구원, 도서출판 마티의 박정현 편집장, 구술 전사를 맡았던 박주현 씨, 각주 작업을 도와준 김하나 박사, 디자인을 맡은 신덕호 디자이너 등 출간을 위해 애써주신 분들도 같은 마음이리라 믿는다.

2015년 12월
목천건축아카이브 운영위원
최원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