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물 계열 Archive

0008, 김중업

계열 번호 Archive number
0008

대상 Archive Name
김중업

생산기간 Dates of Creation
1979.05.-1982.04.

소장위치 Location
목천건축자료관

자료 유형 Extent and Medium
10 실시설계 / 건축

범위와 내용 Scope and Content
1974년 한국교육개발원은 방송시설을 갖춘 1차 시설을 서울시 성동구 우면동산 20에 마련하였다. 1979년, 당시 한국교육개발원의 원장이었던 이영덕은 김중업에게 스튜디오 시설과 연구 기능을 갖춘 <한국교육개발원 신관> 설계를 의뢰하였다. 김중업은 유리커튼월과 태양열 시스템을 정착한 지상 5층 규모의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계획되었다.

수집기간 Collection Year
2013.02.

정리기간 Arrangement period
2013.08.

도면으로 살펴본 <한국교육개발원 별관>의 건축적 특징

목천건축아카이브는 <한국교육개발원 증축>설계 도서를 소장하고 있다. 본 도면은 198112월에 작도된 것이다. 정리하자면, 김중업은 1979년 전반기에 별관의 초기 안 설계를 마쳤고, 초기 안에 대한 구체적인 도면화 작업은 1981년 후반기에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본 설계도서의 작성에는 곽재환, 김희조 등이 참여하였고, 김중업이 도면검수를 진행하였다.

<한국교육개발원 별관>은 대지의 특성과 방송시설 및 연구시설로서의 공간프로그램, 건축기술의 접목을 염두에 두고 계획되었다. 본 대지의 동측과 북측은 우면산이 둘러싸고 있으며, 기존 교육방송시설은 대지의 북측에 면해 있었다. 따라서 시각의 방향성과 공간적 개방감은 남서측으로 향했다. 김중업은 <별관>의 위치를 기존건물에서 남측으로 12미터 이격하여 배치시켰다. 이격공간은 대지 전면과 우면산을 연결하는데 활용되었다. 또한 두 건물을 연결시켜주는 연결복도가 지상 2층부터 4층까지 설계되었고, 그 연결복도의 중심에는 원형의 수직계단()이 위치하도록 하였다. 김중업에게 이러한 이격공간이 필요했던 이유는, 자연과 계획대지와의 관계, 양측 건물의 독립성과 차별성의 공존, 자연적 요소를 건물로 끌어드리는 방법을 고민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고민을 건축적으로 풀어내는 데에는 대지에서 우면산을 연결하는 외부계단, 기존시설과 <별관>을 이어주는 연결복도, 층간을 연결해주는 원형계단 등이 필요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본원 <별관>1층 주출입구를 통해 내부에 들어서면 중복도에 의해 방향성이 나타난다. 북측은 <별관>의 설비와 부속시설들이 내력벽체로 중첩되며 내향적인 공간감을 갖게 하였다. 반대로 남측은 온실과 식당 등의 공용공간이 마련되어 유리로 외벽을 마감하며 밝은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하였다. 2층에서는 기존건물과 연계된 연결복도가 별관의 중복도와 연결되었고, 중복도의 남측 끝 지점에서는 사선 방향으로 오르내리는 계단실과 만나게 하였다. 이 중복도를 매개로 북측으론 회의실 기능을, 남측으론 원장실 등의 업무공간이 마련되었다.

2층 평면에서의 대회의실과 3층부터 5층까지 오픈된 스튜디오 공간은 단면적으로 내력벽 구조로 이루어지게 하여 불투명성을 강조하였고, 서남-남서방향으로 배치된 일부의 업무시설과 연구공간의 외피는 유리로 처리하여 투명성을 강조하였다. 기능에 따라 공간을 위치시키는 방식, 입면에서 외피를 열고 닫는 방식을 의도적으로 극명하게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최상부 옥상층에는 계단실과 창고, 설비실로 이루어진 코어부와 스튜디오 볼륨만이 단위블록의 형태로 남겨지게 하였다. 김중업은 그 볼륨들의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비어진 공간에 옥상정원을 계획해 두었다.

동측 입면도를 보면, 건축과 지면에 대한 김중업의 관계해석을 엿볼 수 있다. 북측에서 남측으로 흐르는 경사도에 대응하기 위해 1층 전면에는 필로티 구조를 사용하였다. 1층 공간은 필로티 라인에서 6.4미터가 후퇴하여 마련되었고, 그 상부의 바닥슬래브부터는 캔틸레버를 내밀어 유리 커튼월 파사드를 제시하였다. 전면과 측면의 일부에 유리 커튼월을 도입한 김중업은, 100x64의 멀리언을 1미터 간격을 배치한 후 슬래브에 닿는 면에는 5mm 칼라유리(높이 1.34m)를 끼우고 안쪽 면에 단열보드(알루미늄 스팬드럴과 같은 불투명한 요소로서)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슬래브와 슬래브 사이의 중간유리는 16(5mm일반유리+6mm중공층+5mm일반유리)mm 페어글라스를 사용하였다.

남측 입면도를 보면, 앞에서 주지한 초기 계획안과의 차이점을 확인할 수 있다. 초기 안에서는 남측 전면이 사선으로 처리되어 파사드의 조형성이 강하게 나타났었는데, 각층의 공간조건이 달라지고 기능과 면적이 증가됨에 따라 입면이 세 덩어리로 분할되었다. 양측의 볼륨을 수직으로 세우고 중앙부만 사선의 벽체로 처리하게 되니 초기 안보다 좀 더 입체적인 형식으로 변화되었지만, 태양열 집열판의 설치면적은 줄어들게 되었다. 마지막에는 옥상부 지붕면에만 태양열 집열판을 설치할 계획을 세웠다.

북측과 서측 입면도를 보면, 김중업이 대지의 조건에 대응하는 방식을 읽어볼 수 있다. 우면산에서 내려오는 경사도를 정지하여 인공적인 바닥 레벨을 계획하였다. 북측에는 외부계단을 설치하여 우면산과 <별관>을 기능적으로 연결시켰으며, 서남측 공간은 옥외공간으로 조성하여 시각적으로 연결시켰다. 또한 건축매스를 조형하는데 있어서도, 내부공간의 기능적 차이에 따라 면을 분절시킨 후 높이에서도 차이가 나타나도록 하였다. 그리고 우면산 측에 면한 매스에는 어두운 자기질 타일을 붙여서 매스의 독립성을 부각시켰고, 전면에는 유리 피막을 돌출시킨 후 필로티 위에 얹었다.

전체적으로 대지의 환경요소와 내부 기능에 따라 입면에서의 표현방식으로 다르게 가져가려했고, 재료의 두께, 모양과 색깔을 다르게 적용하여 입면에서 여러 종류의 표정이 드러나도록 하였다.

한편, 앞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석유파동을 겪는 동안의 한국건축은 에너지 측면에서 단열재 사용, 태양열 축열 등에 대한 가능성이 모색되었다. 김중업 역시 1980년을 전후하여 발표한 프로젝트들을 보면 그 시도들이 발견된다. 김중업이 1979년에 계획한 <아나백화점>의 모형과 단면도를 보면, 태양열 집열판을 시공하기 위해 건물 상부의 일부를 사선으로 처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방배동 M씨 주택>(1981), <방배동 J씨 댁>(1982)에서도 태양열 집열판을 사용하기 위해 지붕을 박공으로 처리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기술과 조형언어의 도입은 당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나가려는 건축가의 의지로 조명할 수 있겠으며, 이 시기의 김중업은 자신이 그동안 쌓아온 건축언어에 신기술의 논리를 입안시키며 새로운 조형성을 탐구하고자 노력한 것으로 판단된다.

분류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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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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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s of creation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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